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붓으로 빚은 항아리에 동서양의 매력 담겨져권혁 작가
김호정 기자 | 승인2016.09.04 20:47

많은 작가들을 만나면서 어쩌면 예술이라는 영역은 재능을 타고나야 한다는 생각이 점점 강해진다. 친구들의 그림 숙제를 대신 해 주다 은사에게 발탁(?)된 권혁 작가를 대하면서 또 한번 그런 생각을 여지 없이 했다. 하지만 작가는 운이 좋았다고 특히 좋은 은사를 만날 수 있었던 것을 강조했다. 작가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재능에 대해 겸손했지만 예술성을 고스란히 드러낸 그림만은 보는 이들을 사로잡는다. 

자신이 잘할 수 있는 것 그것이 바로 한국적인 것
권혁 작가의 작품을 보고 있노라면 동서양 예술의 융합을 경험하는 듯하다. 동양의 철학적인 문화의 상징인 항아리와 접시라는 소재가 그러하며 서양예술의 핵심인 강렬한 색채의 매력이 더해져 동서양의 묘미가 느껴진다. 그림 소재가 된 항아리에 대해 작가는 “나는 이미 한국사람이기 때문에 한국적인 것을 찾았다기 보다 내가 좋아하고 잘할 수 있는 것을 채웠다. 내가 갖고 있는 비례감과 선, 그리고 여백을 추구했다”는 말로 소재 선택의 의도성에 대해 일갈했다.

오묘한 화풍은 남다른 그림공부의 행적 때문이다. “대학교 초년생 시절 ‘거장으로 가는 길, 일리야 레핀전’을 보면서 격한 감동을 느꼈다”는 말과 함께 “어둡지만 미묘한 색채와 인물화의 얼굴에서 풍겨지는 감정들이 다르게 다가왔다”며 당시의 끌림을 떠올렸다. 우연치 않은 전시회 관람으로 인해 작가는 러시아로 유학을 결심했다.
하지만 작가는 아직 그림에 대한 안목이 부족한 학생신분이라는 것을 깨닫고 모아둔 용돈을 털어 유럽으로 배낭여행을 떠났다. 여행의 목적은 일리야 레핀전에서 경험했던 자신의 감동, 그 끌림이 진정한 것인지 알아보기 위한 것이었다. 작가는 “유럽의 많은 박물관을 돌아봤지만 어쩐지 그때 감동을 경험할 수 없었다”는 말로 국립레핀미술아카데미로의 유학은 필연이었음을 나타냈다. 
당시 지금보다 낯선 러시아로의 유학은 대학 스승까지 나서서 부모님을 설득하면서 가게된 길이었다. “은사께서 부모님을 설득했습니다. 혁이는 유학을 다녀와야 하는 재능이라고 저를 치켜 세워 주셨지요. 없는 형편에 부모님은 제 미래를 위해 무리를 해야 했습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작가의 머나 먼 러시아로의 유학 생활이 시작됐다.
한마디로 모든 것을 러시아에서 다시 시작해야 했던 유학은 제 2의 인생을 시작하는 것과 다름 없었다. 그렇게 시작한 러시아 유학에서 배운 것 중 가장 큰 것에 대해 작가는 “그림을 그리는 자세와 태도 그리고 의식이었다”고 강조했다. 특히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한 그림이 아닌 스스로 잘 하는 것을 찾아내고 그려내라는 말과 함께 유럽과 외국의 미술을 모방하지 말라는 스승의 조언은 큰 맥이 됐다.
졸업작품전에서 선보인 ‘대장간’도 스승의 조언에 대한 깊은 깨달음으로 선택한 주제였다. 한국에 돌아온 작가는 개인전 3회까지 인물화를 그렸다. 경제적으로 여의치 못한 신진작가로서 늘 모델이 있어야 하는 인물화 작업에 대한 어려운 점에도 불구하고 인물이 갖고 있는 감정과 느낌의 매력을 화폭에 담는 것을 버릴 수 없었던 작가는 ‘요정’을 떠올리면서 요정시리즈로 대중의 주목을 끌게 됐다.
전시회의 횟수가 늘어갈수록 작가는 스승의 조언으로 들었던 “네가 잘할 수 있는 것을 하라”는 말은 늘 가슴에 남았고 그림을 잘 그리는 것 보다 좋은 작품에 대한 생각이 깊어졌다. 그런 고민 끝에 만난 것이 항아리였다. 

심상에서 꺼낸 항아리, 많은 이들에게 공감 이끌어 내
단순할수록 그림은 어렵다. “마음속 항아리를 꺼내서 붓으로 빚기 위해 유학시절 익히려고 노력했던 그림 공부의 모든 것을 쏟아 부었다”는 권혁 작가의 항아리에는 동양의 기(氣)가 접시에는 공(空)이 느껴진다. 에너지를 모아 품을 것 같은 항아리와 모든 것을 내어 놓고 공허한 마음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접시를 통해 감정의 이완을 경험하게 한다.
동양의 에너지와 서양의 감성이 묻어나는 항아리를 마음으로 빚기까지 그도 실물을 보고 그렸다. 좋은 항아리의 빛과 선을 위해 수 많은 박물관을 다니면서 연구하고 작품에 매진하던 어느 날 작품을 그리려던 찰나 실물 항아리가 아닌 맘 속에 품고 있던 항아리가 떠오르면서 생각의 전환을 하게 된다. 작가는 도자기를 굽는 도공들처럼 붓으로 도자기를 빚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 사고의 전환으로 그간 모아둔 항아리에 관한 모든 자료를 버리고 작가 스스로 직접 붓으로 항아리를 빚기 시작했다. 

9년간 항아리를 그려온 작가는 ”그림 때문에 괴롭고 그림 때문에 즐거운데 항아리를 그리면서 나는 나 스스로를 닦아나간다. 항아리를 만나면서 나 스스로 무엇인가를 해냈다는 생각이 들자 그림 그리는 것이 행복한 생각이 들었다”고 소감을 밝혔다.
인물화를 좋아했던 작가는 최근 항아리를 사람처럼 그리려고 노력하고 있다. 지나가는 유치원 아이들을 쳐다보면서 그 아이들을 항아리로 표현하려고 노력했고 다섯 살 난 딸 아이가 고스란히 항아리에 담겨지기도 했다. 성인식을 앞둔 성년이 된 남녀를 표현한 항아리에는 당당한 그녀와 달리 쑥스러워하는 그가 보인다. 자신의 자화상을 그린 듯 몸부림치는 작가의 모습을 항아리에 담기도 했다. 

최근 작가는 중국에서 활동을 활발히 하고 있다. 2014년부터 시작된 중국에서의 개인전 외에 올 11월 상해아트페어 참가를 비롯해 싱가포르, 대만까지 확대되고 있다. 더 많은 이들이 항아리의 매력에 힐링되길 바란다.

권혁 작가는  
1977년 어머니의 고향인 강원도 묵호에서 태어나 아버지의 직장인 서울에서 7세까지 살다가 가족이 부산으로 이사를 오면서 부산에서 거주하며 미술의 꿈을 키워 나갔다. 대학은 대구계명대학교 서양화를 전공하고 이후 유학, 러시아 국립미술레핀아카데미를 졸업 후 부산에서 거주하며 현재 중국, 일본, 한국 등지에서 24회 개인전과 단체전 약 200여 회를 열었다. 


김호정 기자  hoj700@newsmkore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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