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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움의 경지를 넘어선종훈 작가
김호정 기자 | 승인2016.09.04 20:39
 

설레고 조심스런 마음으로 작품 속 여인과 조우하니 그녀가 가만히 나를 쳐다보는 듯하다. 그 시선에 눈을 맞추려 애를 쓰는데 갑자기 어디선가 미사곡이 들려온다. 고요한 성당에 서있는 듯한 착각으로 그림을 다시 바라보자 밀려오는 미사곡에 모든 세포가 깨어난 듯… 오묘하게 이해되지 않던 작품이 한꺼번에 다가와 뭉클하다. 

선종훈 작가는 주로 여인의 ‘아름다움’에 대해 그리는 작가이다. 그의 작품을 보노라면 나른한 모습과 화려한 색조가 고전적이기도 하면서 현대적이다. 왠지 쉽게 그녀를 이해할 듯 하지만 감고 있는 두 눈에서 느껴지는 신비감이나 시선을 주고 있어도 미묘한 그 눈빛에 만인만상이듯 어렵다. 

예술가들은 자신이 추구하는 가치를 작품에 표현하기 위해 상징성을 갖는 그 무엇인가를 대중에게 보이기 마련이다. 어떤 이는 정물로 혹은 풍경이나 다양한 매개체를 화폭에 담거나 더 넓게는 작품에 쓰여지는 재료가 상징성을 내포하기도 한다. 선종훈 작가에게 여인은 그런 의미이다. 작가가 추구하고자 하는 가치에 대한 상징인 것이다. 작가는 사람에 대한 깊은 애정을 가져왔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그림을 그렸는데 그림 속에 늘 사람을 그려 넣었어요.” 어린 시절부터 자신도 모르게 그려 넣었던 사람에 대해 자신의 그림작업을 돌아보면서 깨닫게 된 사실이라 했다. 여인을 그린 초창기 그의 작품 속 여인들은 그에 대한 비유이다. 사람을 좋아하는 작가는 사람을 그렸고 그 얼이 담긴 굴이라는 얼굴에 중점을 두었다. 
하지만 왜 여인일까? 역사적으로 여인은 남성과는 다른 구도의 길을 보여주었다. 붓다와 예수가 고행을 통해 깨달음이나 신탁으로 인류애에 대한 구원의 길을 걸었다면 여성들은 어린 양을 잉태하고 품는 자기 헌신을 기본으로 한다. 그런 의미에서 작가의 사람 사랑에 대한 방향은 여성성에 기반을 두었다고 볼 수 있다. 


‘작품 속의 모델은 누구일까’ 그림 속 뮤즈에 대해 작가를 만나기 전까지 궁금한 것 중 하나였다. 하지만 작가를 만나자 여성은 바로 화가 자신임을 알 수 있었다. 혹자는 여성의 나르시즘이나 화려함으로 보기도 하지만 작품 속 여인은 또 다른 작가의 모습으로 자기애가 엿보인다. 자기애를 갖는 것은 자신을 먼저 인지해야 가능한 것이고 그것은 자아를 깨달아가는 첫 발걸음이며 깊은 곳에 머물러 있는 진아를 찾아가는 원초적 행위이다. 작가는 줄곧 자신을 찾고 성찰함으로써 예술의 완벽을 향해 구도하고 있는 것이다. 

9년 여의 시간 동안 작가가 그려낸 작품 속 여인은 변화를 보여왔다. 작품 초기시절 형상만으로 표현됐던 여인은 시간이 지나면서 구체화되었고 감은 눈을 통해 더 많은 메시지를 주는 듯 했다. 작가는 눈을 감은 여인에 대해 “그림을 그리면서 나 스스로가 그것이 편했다”는 말과 함께 “반가사유상을 보면서 불상의 감은 듯한 눈에 매력을 느꼈다”는 설명을 통해 작품 속 여인들이 눈을 감았던 이유를 짐작해 볼 수 있다. 대중들은 오히려 눈을 감고 있는 여인에게 위로를 받았다. 장기불황으로 어려운 현실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잠시나마 눈을 감고 자신이 꿈꾸는 이상의 세계로 가고 싶었던 것을 짐작이나 하듯 그렇게 작품 속 여인의 감은 눈은 신비감과 더불어 꿈을 꾸게 했다.


선종훈 작가의 작품 전환기는 프랑스 거주시기 이후부터 이다. 선화예고에서 교편을 잡는 동시에 활발한 작품 활동을 병행했던 십여 년 세월의 마침표를 찍고 쉼표로 이어진 그 시기는 작가에게 그간의 작품활동과 삶을 성찰할 수 있게 했으며 또 다른 작품 세계를 열기 위한 축적의 시간이 됐다. 작가는 심상을 통해 사물과 사람 그리고 역사 공부를 통해 지금 우리가 만나볼 수 있는 작품 속 여인의 상을 자신도 모르게 만들어간 것이다. ‘천인도’는 프랑스 거주 시기 결실이자 동시에 여인을 그리게 된 바탕이 됐다. 천인도는 불교의 천불도를 빗대어 작가 스스로 만든 이름이다. “나는 당시 종교나 그 어떤 가치보다 사람이 먼저라는 생각을 했다.” 작가에게 ‘사람’은 그 어떤 가치보다 상위의 가치로 영성을 띈 존재이자 우주였다.

최상의 가치인 사람, 즉 여인을 작품 속에 표현하기 위해 작가는 오랜 시간 작품을 구상한다. 여느 작가와 마찬가지로 화폭에 어떤 여인을 그려야 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것이 가장 힘든 일이라고 토로했다. 작업과정 또한 매우 치밀하게 계획적인데 “과거에는 즉흥적인 감성과 에너지로 작업을 했다면 프랑스에서 귀국한 뒤로부터는 철저히 계획을 한 후 작업에 들어간다”고 했다. 작품을 자세히 바라보면 여인을 둘러싼 배경의 독특한 질감이 눈에 띤다. 금, 은, 동 가루를 품은 빛깔은 대지 혹은 공간적 신비감이 더없이 잘 표현된 것도 작업 전 이루어진 치밀한 준비 때문이다.


작가가 괴롭다고 표현했을 만큼 치열한 서두 작업이 끝나면 먼저 완벽한 스케치를 한다. 그후 스케치 작업한 여인을 오려내 화폭에 그대로 밑작업하는데 이때 바탕과 밑작업한 여인의 영역을 완벽하게 분리한다. 바탕은 횟가루를 발라 부피감을 조성하는데 그것은 여인의 피부와는 상반된 느낌을 준다. 바탕에 뿌려진 하늘에서 내려오는 꽃이나 여인의 의상은 대부분 단순 표현이 많은데 반해 여인의 피부와 표정은 매우 세밀하게 그려져 바라보는 이들이 한 눈에 여인의 얼굴에 주목할 수 밖에 없다. 이러한 방식에 대해 “나는 어디선가 빛을 받는 사람이 아닌 여인 스스로 빛이 나길 원했다”는 작가의 설명을 통해 그가 인간애를 추구함을 알 수 있다.


근래 들어 작품 속 여인은 관객을 향해 시선을 주고 있다. 그와 더불어 그녀의 등 뒤 창 밖의 풍경이나 가슴에 자연을 품은 것이 표현되고 있다. 이는 한 걸음 올라선 점진적 상태로 자아를 넘어선 경지를 의미한다. 예술가는 작품을 통해 자신의 경지를 말하는 법이다. 최근 작가에게 어떤 변화가 있었을까? “2년 전 가톨릭으로 세례를 받았어요. 세례명이 프라안젤리코 입니다.” 작가는 가톨릭에 마음을 두었다. 
작가는 자신이 추구하는 아름다움은 ‘더함이 없는 상태, 있는 그대로의 상태’라 언급 했다. 그에게 아름다움의 본질은 사람이다. 사람에 대한 애정이 작가에게 관계(관계-이상동몽. 작가의 시)를 통해 확대 되더니 최근 작품 속 여인에게서는 영성이 느껴진다. 인간애를 가진 작가는 아름다움의 최상에 대한 해답을 찾은 듯 하다. 아니 어쩌면 애초부터 작가는 작품을 통해 구도의 길을 걸어오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나이기에 너를 비우고
너는 너이기에 나를 채운다. 
나는 네가 되고파 너를 채우고
너는 내가 되고파 나를 비운다.”
<관계-이상동몽> 중 일부
선종훈

 

선종훈 작가는  
1961년 광주에서 태어나 선화예술고등학교와 서울대학교 미술대학을 졸업하고 18회의 개인전과 다수의 단체전에 참가하면서 아름다움을 화두로 하는 수 많은 작품을 발표하였다. 아름다움은 곧 사랑이고 그 사랑은 작가만의 독특한 화풍으로 몽환적이고 신비롭게 그려지고 있다.


김호정 기자  hoj700@newsmkore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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